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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책

[책 리뷰] 번아웃의 종말 by 조나단 말레식

by 여심지기 2023. 5. 7.

지난달부터 휴식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는 '휴식 크루'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뉴스레터 발행을 위한 콘텐츠 작성에 참여하고, 매달 휴식과 관련된 도서 한 권을 정해서 읽고 만나서 토론하는 모임이다. 오늘은 첫 모임날이었다. 첫 도서는 '번아웃'이라는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혹은 들어봤을) 주제에 대한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 

토론 준비에 앞서 독서한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두 줄 요약

‘번아웃’을 개인의 차원을 너머 심리적, 문화적, 인종적, 역사적, 종교적 차원에서 살펴본 작가의 관점이 신선했다.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에서 비롯된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해 '일',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을 재구성해볼 수 있는 독서 경험이었다.

 

밑줄을 긋게 한  문장들

 

1. 일로 정의 되는 우리의 존엄성과 정체성, 스스로를 돌이켜 보다

번아웃의 원인 중 큰 부분은 일이 사회적·도덕적·영적으로 충만한 삶으로 나아가는 확실한 방법이라는 우리의 믿음이다. 일은 우리가 바라는 이상을 가져다주지 못하며,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소진, 냉소주의, 좌절을 유발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서로 번아웃에 관해 대화를 나눌 수도 없고, 상황을 개선하고자 함께 연대할 수도 없는 방식으로 일에 접근한다. 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탓한다. 홀로 괴로워하고, 이 때문에 역경은 가중된다. 번아웃에 맞서기 위해서 일에서는 얻을 수 없는 공감과 존중을 서로에게 내어주는 데 초점을 맞추는 문화적이면서 집단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안정적인 직장인’의 타이틀을 달고 나서 뭘 해야할지 몰랐다. 허둥지둥 던져 받은 일들을 쳐내면서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나를 탓했었다. 일 안에서 뿐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겨누게 되었다. 그렇게 힘들어했고, 몸과 마음이 무너졌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은 대외적인 모임에서 나를 한 마디로 소개하기 아주 편리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소진된 후 여러 경험을 통해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 어떤 개인이든 절대로 한 문장으로 그 사람을 완전히 표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문장으로 스스로를 압축하고 생략하는 순간 인간으로서 존엄성의 위협이 생기기 시작한다.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다. 알기 쉬운 흔한 타이틀로 요약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어쩌면 우리가 더 많은 ‘부캐’가 필요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로서 나’가 아니라 ‘삶으로서 나’가 필요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나의 행복과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2. 내가 ‘당신’의 번아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결국 번아웃은 궁극적으로 상대방의 인간적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은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질문은 단순히 “내가 나의 번아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당신의 번아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답 안에, 더 나은 일터를 만드는 방법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방법까지 담기게 될 것이다.

💡 번아웃이 개인의 문제를 너머 사회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 ‘나’를 너머 ‘당신’과 ‘우리’라는 것에 한층 경각심과 책임감 비슷한 무언가를 느끼게 해줘서 좋았던 문장이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는 삶, 또 다음 세대가 살아가 삶에서 번아웃을 덜 경험하게 하기 위해 본질적으로 고민해야 할 일터에서의 문제를 살펴본다는 의미에서 나를 설레게 했던 문장이다.

 

3.’ 인생의 덧없음’은 시기마다 다른 이름을 갖고 변해왔구나

인생이 덧없다 느끼기보다는 끝없이 길기만 한 것처럼 느낀 기독교 두뇌 노동자들은 또 다른 소진 장애와 싸우게 되었다. 초기 수도사들은 여기에 아세디아acedia(그리스어로 ‘무관심’)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를 그들을 이집트 북부 사막의 동굴로 이끈 여덟 가지 ‘나쁜 사고’ 중 하나로 삼았다. 이런 증상은 해가 높이 뜨고 아직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몇 시간이 남아 있는 정오 즈음에 찾아왔으므로 ‘한낮의 악마’라는 또 다른 이름이 붙었다. 이 악마는 “태양이 미동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하루가 50시간처럼 느껴지게 한다”라고 4세기 후반의 수도사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Evagrius Ponticus는 썼다. 한낮의 악마로 인해 수도사는 초조해져 대화 상대를 찾아 돌아다니게 된다.

나는 우리가 더는 일을 중심에 두지 않은 정체성을 새로이 빚어낼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우리는 번아웃 문화를 끝낼 수 있다.

 

4.번아웃의 원인 :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육체노동에서 감정 노동으로 일의 형태의 변화, ‘일’에 대한 환상들,,,,

일에 대한 이상과 일의 현실 사이의 이러한 간극이야말로 번아웃의 원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하는 일이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일에 못 미칠 때 번아웃을 겪는다. 이런 이상과 기대는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다. 부유한 국가의 문화에서 사람들은 직업으로부터 보수 이상의 것을 바란다. 우리는 존엄성을 원한다. 인간으로서 성장하기를 원한다. 심지어 일종의 초월적인 목표를 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일을 통해 그런 것들을 얻지 못하고, 그 이유 중 일부는 지난 수십 년 사이 노동이라는 것이 감정적으로는 부담스러워진 반면 물질적으로는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경쟁력이 없는 노동자는 영웅이 아닌 패배자다. 반면 과도하게 긴장한 노동자들은 이상을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다고 칭찬받는다. 일 때문에 소진되었다는 것은 미국의 노동 윤리 규범을 준수하는 좋은 노동자라는 뜻이다.

 

5. 헨리 데이비드 소로로 부터 '일'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의 힌트를 얻다

하지만 소로의 원칙을 실현한다면 번아웃에 인접한 원인 중 다수를 중단시킬 수 있다는 상상은 해볼 수 있다. 너무 많은 일과 너무 적은 자율성은 번아웃을 낳는다. 소로의 프로그램은 자기 결정권을 함양하기 위해 일을 제한한다. 소로의 개인주의적 면모는 그가 공동체의 가치를 평가 절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천재성을 추구하고 한층 고차원의 노동, 즉 지고한 가치의 감각과 자신을 조화시키는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싶어 했다.

💡 그동안 소로의 <월든>을 자연주의 에세이로 해석해 왔는데, 어쩌면 현대인이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한 필수 자기 계발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6. 일에 대한 존엄성이 아니라, 나에 대한 존엄성

일에 대한 이상을 낮추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상을 다 같이 낮출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위한 더 높은 이상이 필요하다.

이런 여러 예시 속에서 우리는 일이 아닌 곳에서 사람들이 존엄성, 도덕적 가치, 목적을 찾아내게 만드는 공동체 구조와 개인적 규율들을 알아내야 한다.

💡 인간의 존엄성은 ‘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해서 존중받아야 한다. 나 역시 그동안 타인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이 하는 일과 그 일 안에서의 '유능한' 정도를 가지고 그를 '평가'하고 있었던 것 같아 많이 반성하게 한 지점이었다. 소위 말하는 세속적인 사고에 매몰되어 타인을 너무 쉬운 차원으로 압축해 해석하려 들지 않았던가?

 

7. 그리고, 고양이가 (역시나) 세상을 구한다. 여러 의미로.

반면 에리카 메나는 그가 키우는 고양이를 생각했다. “전 온 세상의 그 어떤 살아 있는 존재보다도 저의 고양이를 사랑해요. 그런데 고양이는 일은 하지 않지요. 말 그대로예요. 고양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고양이가 이만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면 인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또 친구들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아이들 역시 일하지 않는데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면, 저도 마찬가지이지요.”

💡  고양이를 보듯 나를 보면 어떨까? 타인을 보면 어떨까? 그 사람 자체를 보고 일로서가 아닌 일 외의 모습을 보고,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건 어떨까? 때로 늘어져 있는 나를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8.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안'의 한계가 느껴졌다

💡 <번아웃의 종말>에서는 베네틱트 수도사들이 일을 대하는 방식, 시티스퀘어 조직의 카리스마 리더십, 여가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취미인들까지, '인간의 존엄'이 노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한계가 느껴졌다. 여가를 노동보다 우선시하는 경우 '노동'을 배척하는 인상이 들었는데 존엄성을 일과 여가 둘 다에서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한편, 저자가 제시한 대안들이 단순히 최종적인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반-문화(번아웃 문화의 반대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힌트로서 첫 단추를 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멋진 대안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 대안 중 가장 마음에에 들었던 사례는 베네틱트회 수도사들이 기도라는 신성한 행위에 집중하기 위해 기도 이외의 일에 있어서 효율을 연구하고 기술을 개발한 (ex) 물레방아) 사례였다. '역시 기술은 삶을 더욱 존엄하게 살아가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지. 바로 이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멋진 케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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