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경제적인 곤란을 이유로 자신의 창조성을 외면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성장도 기피한다. 우리의 믿음은 돈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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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대하는 나의 신념은 대체로 부모님으로 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학교에 다닐 때도 아무도 돈이란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고, 사회에 나와서도 돈에 관한 이야기는 왠지 금기시 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코로나때문만은 아니다. 희한하게도 불과 일이 년 사이에 내 주변에서 돈과 관련해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나는 기존의 돈에 관한 신념을 하나씩 무너뜨리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갔을 때, 돌아와서 학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직을 하고 난 후에도 대체로 내 주변에는 아쉬울 틈이 없게 돈을 벌 기회가 있었다. 여유있는 환경은 아니었지만 제 분수에 맞게는 살 만큼의 소비를 할 수 있었다. 엄마에게 '젊었을 때 돈 모아두라'는 귀따가운 잔소리를 들어왔지만 내 젊음과 저축이 무슨 상관이기에 이런 조건부적인 조언을 하나 싶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왔었다. 그렇게 경제 활동을 시작한 20대 초반부터 불과 몇 년전 30대 초반까지 나는 '오늘만 사는' 사람으로 살았다. 대기업을 다니면서 모아뒀던 돈은 프랑스 어학연수에서 근교를 여행다니며 아낌 없이 소비했고, 돌아왔을 때는 몇 개월 여유 생활비 정도만이 남아있었다. 3년 전쯤에 욜로(YOLO : You Only Live Once)가 한참 유행인 때가 있었다. 말그대로 나는 욜로였다. ' 금방 또 벌겠지'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금방 어떻게 되겠지' 란 마음으로 별 생각없이 돈을 쓰고 연애를 하고 맘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벽을 치며 살아왔다.
짧은 시간 사이에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가까운 사람과 헤어지고 받아야할 돈을 받지 못 하고 있었으면 더 누릴 수 있었던 기회를 잃으면서 '돈'이라는 게 도대체 나에게 무엇인지 그것과 나의 관계는 그동안 어떠했는지 진지하게 돌아볼 시간을 가졌다. '가졌다'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그와 나의 관계에 대한 고민은 현재진행중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나는 그가 어렵고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밀도있게 경험한 몇 가지 일들로 최소한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기준은 하나씩 더해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돈은 나쁜 게 아니라는 것. 돈 이야기를 터부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돈은 쓰기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저축왕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직장 동료와 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가 했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처음에는 모르겠지만 하다보면 재미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제대로 된 장기저축을 해본 적이 없던 때라 그의 말이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적게 나마 꾸준히 저축을 하고 돈이 쌓여가고 그 돈으로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하는 과정들을 겪으면서 그가 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주 조금, 조금은 알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최근에 같이 공부하는 6학년 아이와 돈에 관한 주제로 토론을 했다. 그는 돈이 있으면 행복하다는 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돈이 있으면 그만큼 여러가지 꿈을 꿀 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돈이 많을 수록 좋다' 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분명 돈이 많아도 불행한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보다 더 많을 것이다. 다만, 내가 꾸는 꿈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맞닥뜨렸을 때 그것이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혀서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쉽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다. 'ㅅㅂ비용' 이라는 단어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소비를 일컫는 말이다. 그동안 나는 이 'ㅅㅂ비용' 정말 많은 돈과 에너지를 쏟아왔다. 하지만 나를 좋은 사람과 환경에 두고 보니 한발치 더 먼 미래에서 나의 현재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티스트데이트>를 만났다.
돈이 없기 때문에 창작하지 못한다는 변명은 이제 그만 접어두자. 문제는 내 태도이다. 유튜버 '히피 이모'는 오래 전 피아노를 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해 고생하다 부잣집 아이 과외비 8만원이 그들의 여행 일정으로 끊기면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이후 자신의 종잣돈과 대출 3천만원으로 신사동에 작은 바를 얻어 순수익 600만원을 매달 달성했고 돈 불리는 방법을 터득하고 지금까지 계속 자산을 불려가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자신의 지인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예술을 하려면 내가 예술이를 잘 돌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굉장히 와닿았다. 말인 즉슨, 창작을 잘 하기 위해 그 환경을 내가 잘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창작을 잘 할 수 있게 내 안의 창작이가 잘 클 수 있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나는 돈을 잘 돌봐야한다. 그리고 내 미래의 멋진 모습을 위한 사치의 순간에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결국 그 사치를 부리기 위해서는 아무 일 없는 평소에는 돈을 모아야 한다는 말이겠지. 말이 돌고 돈다.
돈에 대한 기준을 세운다. 감정적인 날들에 결별하고 좀더 이성적이고 확고한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돈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면 앞으로 흔들릴 날들은 더 줄어들 것이다. 그것만으로 더 행복한 나의 미래가 아닐까. '돈'이라는 그분이 나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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