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인 사람이라서도 그렇지만, 최근 사회분위기 때문에 카페 나들이를 통 안했습니다. 동네 가까운 카페야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된 후에는 가끔 기분 전환 겸 갔었지만, 분위기가 좋고 커피가 맛있다는, 소위 '갬성 카페'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 가기가 꺼려졌었죠. 며칠 전 도서관에 책을 반납한 후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붕 뜨게 되어 불광천 근처 한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카페이자 바인 듯 보이는 어두컴컴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인테리어의 그곳은, 식사를 건너뛴 사람들이 가볍게 피자 한 판 (?)을 할 수 있고, 해가 지고 밤이 내려 앉으면 창가에 앉아 하천을 보며 가볍게 한 잔 할 수도 있고, 할일없이 산책하는 사람들이 잠시 들러 책구경을 하다가도 될 법한, 굉장히 멀티플렉스한 공간이었습니다.
불광천을 따라 늘어서 있는 하고 많은 카페 중에 굳이 이 곳을 선택해 들어와 차가운 밀크티와 기름기 가득한 하프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이 순간의 나는 평범하고 밋밋한 한 주에 특별함을 부여하기 위해서 '어느 공간과의 만남'을 선택한 것입니다.
밋밋하게 평범하게 한 주를 보내면 뭐 어떻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아티스트웨이>를 시작한 이상 매주 무언가 특별한 아티스트 데이트를 해야만 하는 의무감 같은 것이 생겨버려서, '데이트' 라고 한다면 나와 내가 아닌 어떤 것 (그것은 사람일 수도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과 특별한 만남이어야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어찌됐든 그리하여 갑자기 생겨버린 두 시간. 지나가다 마주치는 낯선 사람을 붙잡고 "지금부터 저랑 아티스트 데이트를 해주시렵니까?" 라고 요청할 수는 없는 것이니, 일상을 잠시 환기 시키고 싶을 때 많은 이들이 택한 옵션인 '감성 카페 가기' 를 택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공간은 나에게 무언가를 베풀어야 할 의무가 생겨버리게 됩니다. 이 친구가 그러고 싶든 아니든 말이죠. 그리고 저 또한 이 공간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기 시작합니다. 별안간 어두컴컴하고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가방에 담긴 책들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원한 게 이거야' 라고 본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며 카메라에 공간 사진을 담아 인스타 스토리에 공유합니다. 그러기를 채 10분도 되기 전에... 뒷문으로 보이는 문이 열리더니 4,50대로 보이는 남성 두 분과 여성 한 분이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카페에 들어서 나와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습니다.
아차, 갑작스럽게 불편한 감정이 불쑥 안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나와 이 공간의 달콤한 데이트를 방해하는 방해꾼이 이렇게나 빨리 나타나다니!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굴 원망하거나 질책할 수도 없지 말이죠. 왜냐면 나는 이 공간에게 무언가를 (내멋대로) 기대하고 온 것이지 여기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까지는 계산을 못 했었기 때문이며, 또 이 공간의 인테리어, 분위기, 음식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빠른 사고 처리를 끝낸 후에 저는 '나는 그냥 평범한 카페에 잠시 허기를 때우러 들른 것이야'라고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덕분에 감정적 허세는 더 부리지 않고 꺼내뒀던 주식책을 펼쳐 현실을 직시하기로 했습니다.
이 장황한 일기는 바로 이번 한 주동안 스스로 의식적으로 아티스트 데이트를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어 기어코 흐릿해져 가는 기억을 끄집어 내는 과정이자, 내 불편했던 감정을 '괜찮아' 라고 다듬기까지 얼마나 빠른 시간이 걸렸는지 자랑하기 위함입니다(?) . 살아가는 데 부정적 감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썩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지니까요. '예민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지 않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일들에 대해 '괜찮아'라고 뭉뚱그려버려야 세상과 어울려 지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때때로 이런 무뎌짐에 익숙해지는 것이 슬플 때도 있답니다. 감정에 충실한 것이 독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한없이 세상이 덧없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 안톤 체호프는 "예술가가 되고 싶거든 인생에 충실해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자신을 표현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우선 표현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모닝 페이지가 일깨워주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렇게 느끼고...... 저렇게 느낀다 ..... 아무도 동감하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나의 느낌이다."
>
이번 주 <아티스트웨이> 내용 중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읽고 감성 카페에 갔던 일을 떠올렸던 것인데, 어째 글의 방향이 오묘하게 흘러가버린 느낌이네요. 꽤나 피곤한가 봅니다(라면서 자신의 무논리를 합리화 하며 잠자리에 든다). 어쨌든 여러분 오늘도 굿나잇.
*2021.03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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